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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인을 위한 사회 지침서 -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

dextto™ 2014. 4. 8. 20:26



나는 자기계발서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자기계발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 저자 자신에게는 유용한 방법이었을지는 모르나, 처해 있는 환경이 다른 독자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얻을 거라고는 저자의 성공담에 대한 대리만족 밖에 없다. 마치 "내 친구 아무개는 잘 나가" 이런 말을 누구에게 건넬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나는 비록 아니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친구를 알고 있다. 그러니 날 무시하지 마라.' 아니면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게 '너나 나나 그 잘나가는 친구에 비하면 똑같은 처지다.'라고 은연중에 건네는 말.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고 난 자신이 초라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호기심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도 주 독자는 이공계인이다. (글을 쓰다 공돌이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했다. 이런 책의 소감을 적으면서 재미있자고 스스로를 깎아 내릴 필요는 없다) 전후 대한민국을 일으킨 산업 역군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알 수 있듯이 무시당하는 사회 풍토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국내 IT 벤처 시장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배들의 조언이 담겨 있다.


저자는 JCE의 창업자로 성공한 1세대 IT 벤처 사업가인 백일승씨와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김재정교수다. 어떻게 보면 둘 다 내 선배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분은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학교 선배이자 속해 있던 과의 교수님이시고, 한 분은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길을 개척한 선배다. 이런 두 선배의 조언이 담겨 있는 책을 읽는 것은 보통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과는 다르다. IT분야에도 사람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고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 진 지라, 구루들이 쓴 책(프로그래밍 언어 책이 아니다)은 찾아서 즐겨 읽는 편이었으니, 이 책도 인생 선배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읽었다.


추천사에도 나와 있지만 단순 자기계발서의 수준은 넘어선다. 나처럼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예상했던 그런 수준의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루하게 충고만 해 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넓게 보는 눈도 키워 주고, 일반 교양서적에서 볼 만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도 들어 있다. 백일승씨는 IT 기업의 CSO답게 살벌한 기업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공계인이 가져야할 소양을 제시해 준다. 업계의 흐름을 읽는 방법, 회사원으로서 능력을 키우고 인맥을 관리하는 방법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김재정교수는 공학도로서 대학생에서 부터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언을 한다. 학점 관리에서 부터 연구실 생활은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에 대한 조언은 새겨들을 부분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두 분이 업계와 학계에서 성공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공계에 필요한 융합형 인간은 전공과 어설픈 인문학을 겸비한 사람이 아니라, IT/BT/NT간 융합형 인간이라고 한다.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이공계 전공 여러 개를 익히라는 게 현실과 조금 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극단적인 비용 절감 사례와 '사업가의 길'이라는 작자미상의 시구를 삽입해 놓았는데, 이게 너무 인간미가 없다. 왜 재미있게 일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는 없는 것인지?


책에서는 직접 회사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어떤 기업의 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많은 이익을 내서 직원들을 고용하고, 이익을 낸 만큼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자 분에게는 너무 복지만 강조하는 기업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복지가 최우선이고 그 존재 이유라는 회사도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본인에게는 전쟁터 같은 업계에서 힘들게 일군 회사여서 후배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에서 하는 이야기 일 수는 있겠지만, 비판을 가했던 그 기업은 복지 최선의 기업 운영 방식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입소문과 방송을 타면서 오히려 최고의 인재가 더욱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시작된 책 본문에는 척박한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한 조언은 많다. 하지만 이런 삐뚤어진 환경에 대한 비판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김재정 교수가 이야기 했듯이 대학생이 어려운 전공 공부를 집중해서 할 시간은 부족하다. 그 시간을 쪼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그로 인해 공부할 시간이 줄어 장학금은커녕 중간 성적도 못 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도 반값 등록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은 없다. 평등하지 않은 출발점에 서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환경이 너무 각박하다. 국내 벤처 기업 환경에서 한 번 실패하면 일어서기 힘들다고 한다. 왜 한국에는 엔젤 투자가가 적은지, 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도 용기 있게 자기의 사업을 꾸려 보려 하지 않고 대기업의 직원으로 만족하고 사는 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최근에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한국에서는 Art를 포함하여 STEAM이라고도 함)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STEM분야 전공자에게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혀 주고, 소득 상위 직업군도 이공계 분야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주요 지도자들이 이공계 출신이어서 주요 정책에 이공계인에게 유리한 정책을 많이 도입할 수 있고, 이게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공계를 선택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공계가 아닌 분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고 좋은 사회가 될지, 이공계 분야는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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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7 수정.

특정 기업을 언급했던 부분에서 기업 이름을 삭제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저자가 언급한 기업이 제가 생각했던 그 회사가 아니라고 하는군요. 저자께서 언급하셨다던 그 기업주의 강연을 찾아서 보고,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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